그는 떠났지만 딸 살아내게 했다...10년 암 아빠 '기적의 월드컵' [김은혜의 살아내다]

  • 2년 전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로,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말한다. 퇴근 후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모금, 추운 겨울 전기장판으로 데워진 뜨뜻한 이불 속, 갓 세탁한 옷에서 풍겨 나오는 산뜻한 냄새 등이 모두 소확행을 느끼게 해주는 것들이다. 나는 아직 미혼이지만 옆에서 다양한 가족을 지켜본 경험으로 감히 말하자면 부모가 되면 소확행의 범위가 훨씬 더 넓어지는 것 같다. 가령 아이가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모는 소확행을 느낀다. 아이는 설령 그 장면을 금세 잊을지 몰라도 부모는 그런 작은 순간순간의 행복을 쌓은 덕에 오늘을 살아내는 힘을 얻는다. 이 환자도 그런 사람이었다.
 
레지던트(전공의) 1년 차였던 몇 년 전 3월이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업무, 그리고 때로 감당이 어려운 중환자로 인해 허덕이던 나에게 어떤 환자가 말했다. “○○○ 교수가 인턴 때부터 이 병원에 다녔던 사람인데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다 지나가니까 잘 버텨봐요.” 암의 완전관해(검사상 잔존 암이 사라져 암을 확인하지 못하는 상태) 진단을 두 번이나 받는 등 암 투병만 10년 가까이 해온 환자였다. 그 두 번 사이의 재발 기간을 포함해 할 수 있는 암 치료는 모두 다 받았다. 다행히 마지막 선택지였던 치료제가 기적적으로 그의 암을 없애준 매우 드문 경우였다. 나에게 이 위로의 말을 건넸을 때가 두 번째의 완전관해 진단 후 약 1년이 지난 시기였다. 길고 힘든 암 투병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워낙 서글서글했던 터라 그 환자가 드물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면 병동 스테이션에 있는 의료진 누구나 먼저 나서서 부탁을 들어주려고 애를 썼다. 의료진 입장에선 등장만으로도 병원 분위기를 환하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존재였고, 같은 병실을 쓰는 암 환자들에게는 희망의 아이콘이었다.
 
어느 날 그 환자가 나에게 물었다. “나 한 달 동안 외국에 갔다 올 수 있을까?” 곧 월드컵 시즌이었는...

기사 원문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28160?cloc=dailymotion

Category

🗞
News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