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할머니의 왼손 손가락은 유난히 짧습니다.
1944년 미쓰비시 중공업 공장에 끌려가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기계에 잘려 나갔습니다.
대법원은 일본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이 김성주 할머니처럼 강제 동원됐던 이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강제징용된 지 74년, 법정 투쟁을 시작한 지 18년 만의 일입니다.
성혜란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며느리가 사 준 가장 아끼는 스웨터를 입고 대법원을 찾은 김성주 할머니. 74년 전 아무 것도 모른 채 일본으로 갔던 기억들을 하나, 둘씩 꺼냅니다.
[김성주 / 근로정신대 피해자]
"일본 가면 중학교도 가고 고등학교도 가고, 그 소리만 듣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갔지요."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 이후, 18년의 기다림.
[김성주 / 근로정신대 피해자]
"들어가서 기계를 자르는 일을 했습니다. 손가락을 넣어서 자른다는 것이 제 손가락이 잘라져 버렸습니다."
[김성주 / 근로정신대 피해자]
"피는 쏟아지지, 얼마나 서러운지 엉엉 울기를, 엄마야 내가 뭣하러 일본에 와서 고생을 하고."
아들의 만류에도,
[현장음]
"옛날 얘기하면 안 돼.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못다한 말이 너무나 많습니다.
[김성주 / 근로정신대 피해자]
"제일로 한이 된 것이 어렸을 때 동생을 두고 갔는데 죽었다고 전보가 왔어요. '나 집에 갈랍니다' 그러니까 '안 된다'고 그래요."
김 할머니는 1944년 도난카이 대지진을 겪고 걷지 못하게 됐습니다.
[김성주 / 근로정신대 피해자]
"지금도 고향에 가면 저 정신대 할머니다 그러고 손가락질 합니다."
대법원은 오늘 미쓰비시중공업이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 5명에게 1억여 원씩을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 23명에겐 8천만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은 하늘로 떠난 아버지 사진을 두 손에 쥐고 놓지 못했습니다.
[이길훈 / 고 이근목 씨 아들]
"하늘나라 계신 아버님에게 꼭 전해드리겠습니다."
채널A뉴스 성혜란입니다
성혜란 기자 saint@donga.com
영상취재 김재평
영상편집 이혜진
그래픽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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