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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육성 회고록 〈10〉
‘10월 유신’에 저항하며 일본에서 망명 투쟁을 하던 1973년,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됐다가 기적처럼 목숨을 건진 나는 조국으로 끌려 들어왔다. 가택 연금 상태에서 맞은 74년은 더 엄혹했다.
박정희 정권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정지할 수 있는’ 긴급조치를 남발하고, 유신에 반대하는 소리를 입이라도 뻥긋하면 잡아갔다.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하고, ‘퇴폐’라는 잣대로 대중가요에 ‘금지’ 딱지를 멋대로 붙였다. 권력의 폭거 앞에서 국민들은 가위눌린 채 숨을 죽여야 했다.
나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사회 인사 71명의 ‘민주회복국민회의’에 고문으로 참여하며 유신 독재에 항거했고, 대학가에서도 반정부 시위와 집회가 이어졌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언론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정권의 통제와 탄압은 언론의 자유를 무력화했다.
신문 백지 광고 탄압
그해 가을 동아일보가 서울대 농대생들의 유신 반대 시위를 기사화했다는 이유로 편집국장 등이 중앙정보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항의하는 동아일보 기자들은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신문·방송의 정부 간섭 배제, 정부 기관원의 언론사 출입 거부, 언론인 불법 연행 거부를 외쳤다.
중앙일보 등 전국 31개 신문·방송 기자들이 지지 선언문을 채택하고, 유신 반대 성명·집회·시위를 보도하며 유신 정치의 문제를 제기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정권은 동아일보를 본보기로 삼아 광고를 압박했다. 주요 기업들에 광고를 내지 않겠다는 각서를 강요했다. 신문에 광고가 사라진 ‘백지 광고 사태’가 발생했...
기사 원문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8132?cloc=dailymotion
김대중 육성 회고록 〈10〉
‘10월 유신’에 저항하며 일본에서 망명 투쟁을 하던 1973년,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됐다가 기적처럼 목숨을 건진 나는 조국으로 끌려 들어왔다. 가택 연금 상태에서 맞은 74년은 더 엄혹했다.
박정희 정권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정지할 수 있는’ 긴급조치를 남발하고, 유신에 반대하는 소리를 입이라도 뻥긋하면 잡아갔다.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하고, ‘퇴폐’라는 잣대로 대중가요에 ‘금지’ 딱지를 멋대로 붙였다. 권력의 폭거 앞에서 국민들은 가위눌린 채 숨을 죽여야 했다.
나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사회 인사 71명의 ‘민주회복국민회의’에 고문으로 참여하며 유신 독재에 항거했고, 대학가에서도 반정부 시위와 집회가 이어졌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언론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정권의 통제와 탄압은 언론의 자유를 무력화했다.
신문 백지 광고 탄압
그해 가을 동아일보가 서울대 농대생들의 유신 반대 시위를 기사화했다는 이유로 편집국장 등이 중앙정보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항의하는 동아일보 기자들은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신문·방송의 정부 간섭 배제, 정부 기관원의 언론사 출입 거부, 언론인 불법 연행 거부를 외쳤다.
중앙일보 등 전국 31개 신문·방송 기자들이 지지 선언문을 채택하고, 유신 반대 성명·집회·시위를 보도하며 유신 정치의 문제를 제기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정권은 동아일보를 본보기로 삼아 광고를 압박했다. 주요 기업들에 광고를 내지 않겠다는 각서를 강요했다. 신문에 광고가 사라진 ‘백지 광고 사태’가 발생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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