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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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육성 회고록 〈6〉
  1971년 4월 18일 서울 장충단공원, 김대중(DJ)은 그날의 감동을 평생 잊을 수 없다. 그해 4·27 7대 대통령 선거를 열흘 앞둔 일요일 오후였다. 3선 장기 집권을 노리는 기호 1번 공화당 후보 박정희 대통령에 맞선 기호 2번 김대중 신민당 후보는 대반전을 벼르고 있었다. 나, 김대중은 최대 승부처인 서울에서 장충단공원 유세에 나섰다.
 
‘10년 세도 썩은 정치 못 참겠다 갈아치자’는 슬로건을 들고나온 나는 바람을 몰고 다녔다. 전국의 유세 현장마다 인파로 뒤덮였고, ‘집념의 젊은 정치인 김대중’에 대한 입소문은 세간의 화젯거리가 됐다. 언론에서도 ‘예상 밖 선전’ ‘백중세’를 전망했다.
 
나에겐 접전의 판세를 뒤집을 회심의 결정타가 필요했다. 당시 선거운동은 많은 청중을 유세장으로 불러내고, 사자후를 내뿜는 연설이 선거의 기세를 판가름했다. 장충단공원 일대에 펼쳐진 거대한 인파의 물결은 선거의 분수령을 만들기에 제격이었다.
 
“김대중 후보의 서울 유세가 열린 장충단공원에는 공원이 생긴 이후 최고 인파가 몰려들었다. 인파는 장충단공원 어린이 놀이터 쪽 철책과 사명대사 동상 철책 위에까지 올랐으며, 나무 위에 수십 명이 기어올라 ‘사람으로 꽃 핀 나무’를 만들기도 했다.” 〈중앙일보 1971년 4월 19일자 보도〉
 
열기는 뜨거웠다. 청중들은 유세장인 장충단공원은 물론 장충체육관 광장, 그 뒤로 신라호텔이 들어서기 이전의 부지, 타워호텔(현 반얀트리) 앞 언덕과 남산순환도로까지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했다.
 
DJ “박정희 종신 총통제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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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1095?cloc=dailym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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